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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하는 여행 : 영화와 시리즈

[브리저튼]공작인지 자작인지 뭣이 중헌디?

윤캔두 2021. 2. 1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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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도 의심할 여지없이 이름마저도 '응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나 영국 출신!' 이렇게 얘기하는 것만 같은 넷플릭스의 <브리저튼>. 19세기 영국판 <가십걸>이라고 해서 시대극이나 사극을 좋아하는 편이라 가볍게 보기 시작했다. 그전에 <에밀리, 파리에 가다>와 <루팡>을 보고 넷플릭스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져있었던 상황이기도 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 포함 모두들 시즌 2가 얼른 다시 돌아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시즌 1의 여덟 편을 보는 내내, 나는 브리저튼 집안 8남매 중 다섯째인 엘로이즈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재미있게 보면서도 아래와 같은 의문들이 지속적으로 떠올랐다.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결혼에 목숨을 걸어야 하지?'

 '왜 남자들은 저렇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데 여자들은 못하지?'

 언니인 다프네가 런던 사교계에 데뷔하여 좋은 신랑감을 찾기 위해 가면을 쓰고, 하고 싶지 않은 일들도 참아내는 것을 보며 엘로이즈는 언니처럼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도 앞서고, 결혼보다는 본인이 좋아하는 공부와 글쓰기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시대가 시대이고 고증을 착실히 한 작품인지라 어쩔 수 없겠지만, (근데 그래 놓고 왜 굳이 다인종으로 캐스팅했는지는 잘 이해가 안되기는 함) 수많은 무도회에서 여자들은 춤을 신청하는 카드를 받아야지만 남자들과 춤을 출 수 있다. 남자들만 선택권을 가지고 있고 여자들은 선택받기를 기다려야 한다. 아, 물론 남자들에게 '어서 나에게 춤추자고 신청해!' 압박을 넣을 수는 있다. 그리고 남자들이 관심 있는 여성에게 구애하기 위해 집으로 찾아가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마찬가지로 남자들만 여자의 집에 방문할 뿐, 여자들이 먼저 발을 떼는 장면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장면들은 특정 문화나 관습, 풍습이 후대까지 굉장히 길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줬다.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주변은 아직까지도 여자들이 먼저 고백을 하거나 프러포즈를 하는 것에 대해서 위의 관점에서 해석을 한다. 여자가 먼저 말을 꺼낼 만큼 매력이 없다거나, 혹은 멋지다거나라는 식으로 평가를 한다. 그 기저에는 아무래도 호감의 표시나 프러포즈는 남자가 먼저 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런 생각들이 혹시 인간의 유전자에 박혀있어서 절대 빼낼 수 없는 건가 싶을 정도이다.

 

 

 결국 우리의 1등 신붓감 다프네는 왕족 다음으로 높다는 공작의 부인이 된다. 조건만 최고인 게 아니라 둘은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기까지 하니 일단 다프네의 결혼은 성공한 듯 보인다. 계속 보다 보니 당시 귀족 여성들이 왜 그렇게 결혼에 목을 매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녀들은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지 않는다. 그녀들은 단지 공작부인 혹은 자작부인, 이렇게 누군가의 부인으로 불릴 뿐이다. 쓰고 보니 '취집'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 배경을 생각하니 앞서 가졌던 의문들이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실제 그 시대에 영국에서 살며 <제인 에어>를 쓴 샬럿 브론테와 그녀의 자매들도 처음에 편견 때문에 남성 이름의 필명을 써서 책을 출간했을 정도라고 하니 그 당시의 시대상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그녀들을 정상 참작해주자. 

 

 우리나라는 은장도가 있을 정도로 여성이 순결이나 정조를 지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가치처럼 여겨졌다. 나는 이게 유교문화에서 파생된 것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영국 귀족 사교계에서도 떠받들어지는 가치였다. 미혼 여성들은 정원에 남자와 단 둘이 있기만 해도 스캔들에 휩싸여 혼사길 막힐 걱정을 해야 한다. 이 외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의 가장은 엄마가 아닌 첫째 아들인 점, 귀족 여성들의 생계와 삶의 질은 남편에게 달려있다는 점, 혼전임신이 굉장한 흠으로 여겨지는 점 등 여러 가지들이 내가 지금 사는 세상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앞서 말한 관습이나 풍습이 19세기와 21세기, 영국과 한국이라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듯하다. 좋다 나쁘다 혹은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이렇게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서 다 비슷한 걸 보면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마지막에 다프네는 본인을 괴롭혔던 가면을 벗고, '척'하지 않고 살기로 한다. 진실되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본인이 쓴 가면을 벗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프네는 물론 결혼과 출산을 인생의 과업으로 여기지만, 나름 주먹도 날릴 줄 아는 여성이었다. 내 남편이 공작인지 자작인지보다 중요한 건,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지점에서 다프네에게는 본인의 부모님처럼 아이들을 낳고 잘 기르면서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었던 것이다. 반대로 엘로이즈는 피아노와 자수를 배우는 대신,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싶어한다. 이 고민에는 정답이 없으니 다프네와 엘로이즈처럼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면 그뿐이다. 내 해답도 찾아가고 있는 중! 가볍게 볼 수 있는 로맨스인 줄만 알았는데, 보고 나니 의외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작품이었다. 얼른 시즌2가 나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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